한국 천주교의 정신적 지주인 김수환 추기경님이 2009.2.16 오후 6시12분 입원중이던 서울 강남성모병원에서 폐렴 증세로 병환이 악화되어 87세로 선종(善終)하셨다.
평소 약속 대로 선종 직후 안구 적출 수술을 받은후 명동성당으로 운구된 고인의 시신은 빈소인 명동성당 대성전 안에 안치돼 조문객들을 맞고있다.
장례는 서울대교구장으로 5일장으로 치러지며 장지는 경기도 용인 천주교 성직자 묘역에 마련된다.
20일에는 장례미사가 진행되는데 오전 10시에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정진석 추기경의 주례로 진행된다.
교황의 선종과 마찬가지로 추기경의 시신은 유리관에 안치돼 조문객들이 그의 마지막 얼굴을 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일반 신부들의 경우는 지하 성당에 안치되지만 추기경에 대한 천주교의 장례 의식에 따르며 유리관에 안치된 시신은 추기경의 의복을 갖춰 입은 채 눈을 감고 있는 상태다.
김 추기경은 우리 시대의 큰 어른으로 한평생 사랑을 실천하셨으며 1969년 당시 세계 최연소 추기경으로 서임돼 최고령 추기경으로 선종하셨다.
김 추기경은 1922년 5월 대구에서 출생하여 1951년 사제품을 받은 후 1966년 초대 마산 교구장에 올랐고 1968년 제12대 서울대교구장으로 취임하면서 대주교가 되었으며 이듬해 교황 요한바오로 6세에 의해 한국인 최초의 추기경으로 임명됐다. 이후 30년 동안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으로 재임하면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을 2차례 역임했다.
한국 최초의 추기경으로서 김 추기경은 한국 교회의 위상을 높이는 데 앞장섰다. 81년 테레사 수녀의 첫 방한을 성사시켰고, 조선교구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처음으로 방한했던 한국 천주교회 창립 200주년 기념행사(84년), 제44차 서울세계성체대회(89년) 등 굵직한 행사들이 그의 지휘 아래 치러졌으며 김 추기경이 교구장을 맡은 30년간 서울대교구는 48개 본당, 신자 14만여명에서 197개 본당, 신자 121만여명으로 눈부시게 성장했다.
김추기경은 교회 안의 성직자에 머물지 않고 한국사회의 중요한 고비마다 종교의수장을 넘어서 민주화를 외친 큰 횃불 이었다.
1970년대 유신체제에서 정치적 탄압을 받던 인사들의 인권과, 정의를 위해 힘겨운 투쟁을 벌였고 19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한복판에서 양심의 울림과 행동을 끈질기게 이어갔던 투사였다.
70-80년대 독재 정권 하에서 민주화를 향한 촛불을 꺼내들어 당국의 강압 속에 언로가 차단된 상황에서 중요한 시국 사건이 있을 때마다 정부에 대한 권고와 일침을 계속해왔으며, 71년 성탄 자정미사 강론에서 장기집권으로 치닫는 박정희 정권의 공포정치를 비판했고 이듬해 8월에는 시국성명을 발표하기도 했으며, 이후로도 지학순 주교의 구속(74년)을 시작으로 명동 3·1절 기도회(76년), 전주교구 7·18 기도회(78년) 등으로 사제들이 잇따라 구속되자 김 추기경은 성명서와 강론을 통해 자유언론과 인권, 민주회복을 강조했다.
김 추기경의 정치 참여는 당연히 가톨릭과 정권의 대립 양상을 낳았고, 교회 내부에 교회의 정치 개입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으며, 특히 명동성당은 80년대 민주화운동의 해방구로 자리잡기도 했다.
그가 세상을 향해 외친 메시지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의 평화와 화해였으며 생전에 사랑과 용서를 특히 강조하여 장기기증을 통해 마지막 순간까지 희망의 빛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이제는 가시고 없는 님이시지만 그가 남긴 사랑과 용서의 메시지는 영원히
우리의 곁에 남아 많은 사람들에게 의망을 주리리라 생각하며 가신님의
명복을 빕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연보
1922년 5월8일(음력) 대구 출생
1933년 성 유스티노신학교 예비과 입학(대구)
1941년 3월 서울 동성고교 졸업
1941년 4월 일본 상지대학교 입학
1947년~1951년 카톨릭대학 신학부에서 신학 전공
1951년 9월 사제서품, 대구대교구 안동본당 주임
1953년 4월 대구대교구 교구장 비서
1955년~1956년 대구대교구 김천시 황금동 천주교회 주임신부
1956년~1963년 독일 유학. 뮌스터대학교 대학원 사회학 전공
1964년~1966년 주간 카톨릭시보 사장
1966년 5월 주교 서품, 마산교구장 착좌
1968년 5월 대주교 승품, 제12대 서울대교구장 착좌
1969년 4월 교황 바오로6세로부터 추기경 서임
1970년~1975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1972년~1973년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 준비위원장
1975년 평양교구장 서리 겸임
1981년~1987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1998년 서울대교구장 및 평양교구장 서리 퇴임
2009년2월16일 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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