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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문묘(文廟)와 성균관(成均館)

엘리트1 2015. 12. 17. 08:39

 

                        서울 문묘(文廟)와 성균관(成均館)

 

서울 명륜동에 있는 사적 제143호인 조선시대 서울 문묘와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이자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의 훌륭한 유학자들의 신위를 봉안하고 제사지내는 곳이다.

일반적으로는 서울 문묘 또는 성균관으로 통칭하여 불린다.

서울 문묘와 성균관은 조선 태조 7년(1398)년에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 규모는 대성전과 명륜당을 비롯하여 96칸에 달하였다.

문묘는 제사를 위한 대성전 구역과 학문을 탐구하는 명륜당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4대성인과 제자인 10철, 송조 6현과 우리나라 명현 18인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그러나 화재와 전란으로 소실되어 선조 39년(1606)에 명륜당을 중건하면서 비로소 격식을 갖추게 되었다.

서울 문묘와 성균관은 조선시대 최고의 교육기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지만 조선 말기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침체되기 시작하였다. 

1910년 일제강점과 함께 성균관은 더욱 침체되었으며, 1943년에 폐교되었다가 광복 후 명륜전문학교로 개교하였고 이듬해성균관대학으로 개명하였다.

1953년에 성균관대학교가 종합대학이 되면서 1963년부터 성균관대학교와 성균관이 분리되었다.

입구에는 하마비와 탕평비각, 하연대가 있으며 명륜당 경내에는 약 400년 정도로 추정되는 천연기념물 제 59호인

은행나무가 있다.

 

 

영조가 세운 하마비와 탕평비각

 

 

 

 

임금님이 성균관을 올때 타고 온 가마를 내려놓았던 하연대

천연기념물 제 59호 서울 문묘 은행나무

 

 

공자의 위판을 봉안한 대성전, 현판은 한호의 친필이라 한다.

문묘의 연혁을 기록한 묘정비와 묘정비각

 

재학당

조선시대 유학을 가르치던 조선시대 으뜸 교육기관으로 보물 제 141호 명륜당

 

명나라 사신 주지번이 1606년 초여름에 쓴  명륜당 현판

널리 경을 배워 예를 지키라는 박문약례

덕이 만방에 펼치라는 뜻의 덕화만방은 1884년 중국으로 부터 받은 현판이라 한다

성균관의 무기고인 육일각

학생들의 식당인 진사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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